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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처음 설정은 피아니스트 란이었지만 다 쓰고 보니 피아노 치는 란 보다 작곡하는 세니카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은 것 같네요...마감하고 나니 수정할 시간도 없어서 그대로 제출해버린 게 정말 아쉬웠습니다...다음에 다시 기회가 되면 더 좋은 글로 찾아뵐 테니까요... 이번 글은 좋게 봐주셔요....

Dear my Darling

[란×세니카, 사망소재 有]

 

 

   최초의 기억은 아마도 병원 안. 어릴 적부터 허약한 몸에 선천적인 질병까지 가지고 태어났던 내게 병원은 집과도 같은 곳이었다. 아니,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보다 병원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병원을 집으로 여겼대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병명은 뭐랬더라, 유전적인 문제로 인한 면역체계 이상 이랬던가. 종종 발견되는 병이지만 개중에도 내 증세는 더 특이하여 학계에도 보고된 적이 몇 번 없는 아주 희귀한 경우라더라. 제대로 된 치료제조차 아직 없었고, 때문에 작은 병에도 쉬이 넘어가지 못하고 가벼운 감기마저 큰 문제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기억이 나는 시절부터 내가 봐온 것은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과 항상 바쁘게 움직이던 간호사들. 예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이 항상 환자복을 입고 병원 밥을 먹었더랬다. 학교는 나가는 족족 쓰러져서 눈을 떠보면 병원이었으니 또래들과 어울릴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이 어린아이의 심리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리가 없지 않을까. 아이답지 않게 나는 항상 어두웠고 어딘가 우울해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말수는 점점 줄어만 갔고 중학생이 될 무렵에는 마음의 문을 닫고 모든 희망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병원에 있으면 눈치만 늘어간다. 고작 열네 살짜리 어린아이였대도 내가 오래 살기 힘들다는 것쯤은 눈치로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날 때부터 병원에서 지내다시피 했으니 병원 생활 이외에는 딱히 즐거운 경험을 해본 적도 없고 추억이라 이야기할 만한 것도 없었다. 건강해져서 다시 학교에 나가겠다는 생각 따위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남은 미련도 없고 그저 어떤 형태로든 병원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담당하는 의사가 내 상태를 알았는지 나의 심리치료를 권했다. 음악치료를 받게 해 볼 생각이 없느냐며 본인의 의지가 없는 상황엔 치료제가 있다 하더라도 치료가 힘들 것이라고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게 좋을 거라 말했다. 그때부터 부모님은 나를 각종 연주회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셨다. 사람을 직접 마주해야 하는 음악치료보다는 그저 찾아가서 관람만 하면 되는 연주회가 더 낫겠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항상 병원에서 치료만 받던 몸이었으니 체력이 받쳐줄 리 만무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의지가 없어 초반에는 부모님이나 나나 서로에게 힘들기만 할 뿐이었다.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내게 부모님은 실망의 빛을 보이셨고 나는 억지로라도 데려가려는 부모님을 조금 원망했다.

 

   그러다 너를 만난 건 연주회를 찾아다닌 지 일 년이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작지 않았던 연주회로 기억한다. 넌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벌써 국내에서 이목이 쏠리고 있는 피아니스트 유망주였고 그런 너의 독주회가 놀랄 일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가 내 또래의 아이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꿈이라도 찾길 바라셨는지 네 연주회가 열리는 족족 나를 데려가셨는데, 그곳에서 본 너의 모습은 마치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마른 체형의 열다섯 살 남자아이. 힘이라고는 조금도 써본 적 없을 것 같은 너의 하얀 손끝은 온 세상에 너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강렬한 힘으로 건반을 누르고 있었고, 무대에 올라 피아노 앞에 앉은 너에게서는 음악을 향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너를 보고 매사에 의욕 없이 그저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내게도 꿈이 생겼다. 너를 위한 곡을 쓰고 싶었다. 오로지 너만을 위한, 피아노 앞에서만큼은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 눈동자에 어울리는 그런 곡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작곡을 배우고 싶다 말씀을 드리고는 치료에 전념했다. 십수 년 만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신 부모님은 놀란 기색이 역력하셨지만 곧 내 의지를 알아차리시고는 온갖 지원을 해주셨다. 전보다 더 힘든 치료가 이어졌지만 회복 속도는 빨랐고 이 년이 조금 안 되자 다시 학교에 나갈 수 있을 만큼의 몸 상태로 돌아왔다. 덕분에 고등학교 1학년에 편입할 수 있었던 나는 고등학교 3년을 내내 치료받고 작곡을 배우는 데에 썼다. 입시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했던 공부로 대학 진학에는 무리가 없을 성적을 만들어냈고 국내에서 음악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는다는 학교에, 너와 같은 학교에 합격했다. 

 

   오 년 동안 꾸준히 이어온 치료는 효과가 있었는지 몸 상태는 전보다 많이 좋아져서  병원에 가는 횟수는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완치된 건 아니어서 앞으로도 약을 끊을 수 없었고 언제 병세가 다시 나빠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병원 신세를 벗어나게 된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몸이 자유로워지자 나는 그동안 못 했던 것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역시 네 연주회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열다섯부터 주목받던 너는 스무 살에는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국제 콩쿠르 수상은 물론, 세계적인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너였으니 연주회 티켓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려웠지만 나는 기회가 닿는 족족 너를 찾아다녔다. 너를 실제로 만나 잠시라도 대화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너와 직접 만나게 된 것은 3학년 말을 향해 달려가던 가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붉은 낙엽이 내려앉은 캠퍼스의 길은 유달리 예뻐 보였고 그 길의 끝에는 네가 서 있었다. 너는 나무에 매달린 하나 남은 나뭇잎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안녕, 인사를 건네자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열정 가득한 눈빛을 보이던 모습만을 봤던 탓인지, 네 성격이 생각보다 소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네 연주 잘 봤어. 아, 난 작곡과 세니카 루. 네 연주는 열다섯 살부터 봐 왔어. 같은 나이에 같은 학년이니까 말 놔도 되지?

 

   지난 몇 년간 연주회에서 꾸준히 너를 봤기 때문일까, 심적으로는 이미 거리가 없는 듯하였지만 당황한 너를 보고는 아차 싶어 말을 덧붙였다.

 

  -아, 안녕···. 나는 피아노 전공 란 벨르네피아. 연주 봐줬다니 고마워.

 

  -그때부터 네 팬이었어.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면 이야기라도 하지 않을래?

 

   그 날 이후로 너와 점점 가까워졌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고, 가끔 한 번씩 만나던 것이 일주일에 한 번, 사흘에 한 번이 되며 어느새 정말 많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거의 매일 점심을 같이 먹고, 시간이 맞으면 네 연주회도 찾아갔다.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낸 내게 또래 친구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남들이 이성 친구니, 애인이니 할 때도 입시 준비에 바빠 어울릴 시간이 없었기에 거의 처음 만난 같은 나이의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엔 분명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를 만날수록 관심이 갔고 마음이 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게 처음 가까워진 이성에 대한 호기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아노를 칠 때면 돌변하는 네 눈빛이, 오로지 무대에 집중하는 고요함이, 연주가 끝난 후 땀에 젖은 붉은 머리카락이, 조명 아래서 빛나는 너의 모습이. 열다섯부터 봐온 너의 모든 모습이 좋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랐다.

 

   먼저 마음을 내비쳐 온 것은, 아마, 너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넨 너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많이 달라서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세니카, 나 할 말이 있는데···. 좋아해, 좋아하는 것 같아. 너만 괜찮으면, 진지하게 만나 보지 않을래?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 친구들이 말하기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다던데 너와 이렇게 한순간에 이어지다니, 순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착각이 들었다.

 

  -···세니카? 내가 부담 줬다면 미안해.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니니까 편하게 답해줘.

 

   그런 게 아니라고, 네가 싫다거나 누굴 만날 생각이 없다는 게 아니라고 겨우 말하고는 좋아해, 세 글자를 더듬더듬 내뱉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놀랐을 뿐이라고 답하자 네 얼굴에 화색이 돌며 조금 전까지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환한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았다.

 

   연애는 일 년 하고도 두 달쯤 지속됐다. 몸이 약한 나는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없었기에 대부분의 데이트는 집 근처, 학교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학교 근처의 맛집, 분위기가 예쁜 카페를 찾아가고 영화관이나 종종 미술관을 방문하며 여느 연인들과 다를 바 없는 행복한 연애를 했다. 너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좋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네 연주를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어릴 적부터 동경해왔던 네가, 이제는 연인의 자리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해 연주하는 곡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누구도 듣지 못한, 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나를 위한 네 연주가 너른 홀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 썩 인상 깊었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울려 퍼지는 음과 밟았던 페달을 떼며 끊긴 음이 다음 음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조화를 이루었고 언제나 그래왔듯,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돌변하는 열정 가득한 네 눈빛이 감동을 일으켰다. 연주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피아노를 담은 눈동자, 콧잔등에 맺힌 땀, 적당한 길이의 손톱이 건반을 누르는 모습 하나하나가 전부 사랑스러웠다.

 

   작곡을 배운 내가 너를 모티브로 한 곡을 쓰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이름이 알려진 너는 많은 작곡가들의 소재가 되어 왔고 국내 최고라 불리는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쓴 곡을 가장 사랑했다. 지금까지 써온 곡들은 그저 연습작에 불과했지만 그런 너를 보고 오롯하게 너만을 위한 곡을 하나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완벽에 완벽을 기하다 보니 처음엔 어려움이 있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의 연인을 위한 곡을 항상 쓰던 곡처럼 뻔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부담 갖지 말라는 너의 말에도 나는 오로지 완벽한 곡을 쓰겠다는 생각뿐이었고 매일 밤을 새우며 썼다 지우고 구겨버린 종이가 사십여 장이 되어갈 때쯤 겨우 중반부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어찌저찌 완성되어가는 곡을 자랑하러 네 연습실을 찾아가던 길,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감에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내디딘 한걸음에 현기증이 일었고 내쉬는 숨에서 열기가 느껴졌으며 휘청이는 다리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다는 듯,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요즘 며칠 너무 무리한 탓인가, 생각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송되는 와중 종종 눈을 떴는지 드문드문 기억이 남아 있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여기가 어디인지 아느냐며 끊임없이 묻던 구급대원들, 그리고, 잔뜩 눈물 젖은 얼굴로 날 내려다보며 오른손을 꽉 부여잡던 너. 너를 안심시키려 말을 걸었던 것까진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로 응급실에서 눈을 뜨기까지의 기억은 없었다.

 

  -별일 아닐 거라며, 세니카. 별일이 아니긴···!

 

   깨어난 나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온 네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병이···재발했단다. 그것도 전보다 더 심한 상태로. 쓰러질 때의 감각이 어릴 때의 기억과 매우 흡사했음에도 괜찮을 거라며, 요즘 무리를 해서 그런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 한 편에 지울 수 없이 남아 있던 한 무더기의 불안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담당의는 내 병세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며 꾸준히 약을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었다. 증상이 완화되었을 뿐, 완치된 것은 아니니 앞으로도 각별히 주의해야 함은 물론, 다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건강엔 아무 이상이 없었기에 안심했었다.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고 상태를 지켜봤지만 이렇게 급격히 악화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 당황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입원 절차를 마치고 병실에 들어서자 어릴 때의 익숙한 기억이 되살아나며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벗어난 병원이었는데···. 지난날의 노력과 성취가 병으로 인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그저 허무했다. 무기력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전보다 더 악화된 병세에 강도 높은 치료가 이어졌지만 호전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지쳐갔다. 약한 몸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아프지만 않았어도 너와 함께 시간을 보냈을 텐데, 라며 한탄하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네가 입을 열었다.

 

  -그런 말 하지 마. 어서 나아서 퇴원해야지. 너 퇴원하면 너랑만 붙어 있을 거야. 너 하고 싶다는거 다 해줄 테니까 제발 낫기만 해, 너는.

 

   너와 나의 간절한 바람에도 하루하루가 상태는 나빠지기만 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얼마 못 버틸 수도 있겠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너에게 선물하려고 쓰던 곡이 생각났다. 그 곡만큼은 완성해야 했다. 급하게 노트를 꺼내 뒷부분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막 절정에 들어선 곡은 너의 붉은 머리칼처럼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켰고 빛나는 금안처럼 반짝반짝한 느낌을 주었다. 너를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것을 곡에 녹여내자 어느새 곡은 종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몇 번을 고쳐 썼던 처음과는 다르게 며칠 만에 곡이 완성되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너를 향한 내 감정을 토해내듯 곡에 담았고 완성된 곡은···이만하면 괜찮지 않으려나 싶었다.

 

   늦은 밤이었다. 어둠이 내린 밤하늘 너머로 작은 별이 빛나고 창밖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잔잔한 밤이었다. 곡을 완성하려 지난 며칠 무리했기 때문일까, 원래부터 달고 살던 기침이 더 심해지고 밤만 되면 열이 올랐다. 학교도 휴학하고 몇 달째 치료를 받고 있지만 예전에 사용하던 치료제조차 이젠 듣지 않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저 지금 생긴 병이 더 심해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점점 늘어나는 병에 매일 지쳐갔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평소와 달리 몸이 좀 가벼운 것이, 예감이 좋지 않았다. 너에게 편지를 하나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완성된 악보의 뒷장에 너에게 전하는 말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았다. 맺혀 있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종이를 적시자 검은 잉크가 종이 결을 따라 번져나갔다. 너에게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더는 시간이 없는 내가 가여워서 완성된 편지를 끌어안고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 진정이 되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완성된 편지를 악보 사이에 겹쳐 머리맡에 두었다. 아침에 찾아올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지만 아마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만 마음을 정리하고 침대에 눕자 눈물이 얼굴을 따라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외면하고 눈을 감았다. 슬프도록, 잔잔한 밤이었다.

 

  「슬픈 꿈을 꿨어. 내가 멀리 떠나는 그런 꿈을. 너를 남겨두고 아주 멀리 떠나버리는 꿈을 꿨어, 란. 내가 없는 세상에서 네가 얼마나 눈물 흘릴진 모르겠지만 너무 오래는 울지 않기를 바라. 이 곡이 네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부족하겠지? 그래도 너를 생각하며 쓴 곡이니까 한 번 쯤은 연주해줘. 너에게 받은 사랑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돌려주려고 해. 정말, 정말 많이 사랑했어. 부디···네가 행복하기를.」

   Dear My Darling.

[후기]

처음 설정은 피아니스트 란이었지만 다 쓰고 보니 피아노 치는 란 보다 작곡하는 세니카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은 것 같네요...마감하고 나니 수정할 시간도 없어서 그대로 제출해버린 게 정말 아쉬웠습니다...다음에 다시 기회가 되면 더 좋은 글로 찾아뵐 테니까요... 이번 글은 좋게 봐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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