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세니카. 내가 너의 첫 번째 관객은 되지 못하니까. 내가 너에 첫 번째이자 마지막 반주자가 되게 해줘. 너와 헤어진다 해도 다시 만났을 때 몇 번의 연습 없이도 너와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할게. 내가 너의 곁으로 찾아갈게. 그러니 너도 날 잊지 말아줘. 너의 첫 번째는 항상 내가 될 테니까.”
* * *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가족에게 살가운 성격도 아니었을뿐더러 바쁜 일정 탓에 해외로 출국하시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난 시골에 계시는 조부모님들과 함께 살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덧 내 나이 9살.
조부모님 댁은 공기도 맑고 물도 좋은 한적한 시골이었다. 봄이면 진달래가 피고, 여름이면 매미가 울고, 가을이면 곡식들이 익어가고, 겨울이면 새하얀 눈이 온 마을을 뒤덮는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면 마을을 덮은 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자라난다. 시골길 답게 포장되지 않은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보인다.
어느 여름날. 아직 아침이라 너무 뜨겁지도 않았던 그 날은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아침밥을 먹은 것도, 쉬는 시간 교실 뒤편에서 카신에게 걸었던 몸싸움에 진 것 또한. 단지 다른 점이라고는 요즈음 너무 더우니 시냇물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보이는 강가에 놀러 가자는 노리의 제안(이라 부르고 칭얼거림이라 읽는 것) 뿐이었다. 용케 카신까지 꼬드긴 노리는 내 수락의 의사를 듣자 그게 뭐라고 그렇게 좋은지 실실 웃었다. 난 짜증이 올라왔지만 그런 나보다 카신이 먼저 등짝을 짝 소리가 나도록 찰지게 때려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노리 녀석이 꽤나 귀찮지만 좋은 생각을 했네―’ 라던가 ‘아, 방학 언제 하는거지.’ 라는 실없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 널 만나기 전까지의 나는.
찌르르, 맴맴. 이름 모를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찌를 듯이 들려오는 지금은 한창 대지가 익어가는 여름이었다. 학교에 있는 동안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빛은 구름을 만나 잠시 주춤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가 되니 다시 빼꼼하고는 고개를 들이밀었다. 부채를 휘휘 부쳐도 날아가지 않는 더위에 나는 얼굴을 살풋 찌푸렸다. 집에 돌아와 책가방을 방에 두고 할머니께 친구 두 명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오늘 집으로 강변 근처에서 놀다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내겐 조금 커다란 할아버지의 밀짚모자를 쓰고 둘과 모이기로 한 작은 동네 슈퍼로 나섰다.
동네에 유일한 슈퍼에서 막대 바 아이스크림을 사고 푹푹 찌는 듯한 무더위를 헤치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강가에 도착했다. 강의 위쪽에는 돌다리가 있었고 양 옆엔 잔디와 간간이 심어진 나무가 있었다. 나는 이 멋진 풍경을 노리가 발견했다고 방방 뛰며 자랑하는 모습이 얄미워 괜히 노리의 근처에서 물이 크게 일렁이도록 찰박거렸다.
어느덧 해가 점점 지고 저녁때가 되었다. 저 하늘 위에 걸려있던 태양은 어느새 키 작은 나무와 비슷한 높이로 내려왔다. 배도 고프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강변에 두고 온 모자가 생각나 둘에겐 먼저 가보라 하곤 서둘러 강둑에 난 길을 따라 뛰어갔다. 조금 전까지 놀던 장소에 도착해 모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모자가 걸리적거려 물에 들어가기 전 잠시 작은 나무의 가지에 걸어뒀던게 생각나 근처의 나무를 주위로 찾아보았다. 모자를 발견했을 때 하늘은 이미 붉은 석양빛으로 물들었다.
생각보다 모자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을 깨닫고는 어느새 고파진 배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강 저편에서 어떤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 긴 생머리의 한 여자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바람이 불어와 가려진 머리카락을 들추자 슬며시 흑진주를 박아 넣은듯한 눈과 산딸기가 녹아든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앳된 목소리와 얼핏 봐도 가녀린 몸에서 나온 소리는 내 마음을 쾅! 치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작은 몸에서 나온 소리가 그렇게 커다란 힘을 가진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천사가 내려와 노래 부른다 해도 이런 소리가 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던 목소리를 홀린 듯이 듣고 있으니 어느새 그 강변에는 나 홀로 남아있었다.
’저 앤 누구지? 이 주변에서 보진 못했는데. 내가 모르는 애인가? 노래, 다시 한번 들을 수 있을까...?‘
머릿속이 온통 네 생각으로 가득 차도 몸은 솔직한지 이제 한계에 달한듯한 주린 배는 꼬르륵 소리를 토해내었다.
“이제 집에 가야지.”
* * *
집에 도착하자 이미 태양은 저물었고 예상대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날 호되게 혼내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널 만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이리도 빛나는 나의 천사님을 만났는데 후회를 할 수 있을까. 늦은 저녁을 먹고 밀려오는 수마에 눈을 감았다. 나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다시 널 만나길 빌었다.
그리고 그런 너와의 재회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아니 가까웠다.
이렇게나 덥고 습한데 학교는 언제쯤 방학을 할 생각인지. 학교까지 걸어가는 얼마 안 되는 길이 여름만 되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학교에 도착하고 대충 실내화로 갈아신고는 책상 옆 가방걸이에 가방을 걸었다. 어제 일로 여러모로 신경이 쏠렸는지 잠을 잤는데도 피로가 쌓여서 평소와는 다르게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자려고 책상에 엎드렸다. 그러자 평소처럼 카신에게 시비를 걸을 셈으로 교실을 두리번거리고 있지 않은 날 본 노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 란, 오늘은 웬일로 얌전하네?”
“하아? 뭐라고? 너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히익―!!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노리 자식은 화들짝 놀라서는 내게 멀어지려 뒷걸음 치다가 발이 꼬여 우당탕 하고는 넘어졌다. 헹, 꼴 좋다.
그나저나 잠이나 자려고 했더니 노리가 망쳐버렸다. 지금이라도 다시 잠을 자려는 찰나 어느새 조례시간이 되었는지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아무리 나라도 선생님이 들어오고 계시는 와중에 고개 숙이고 잠을 자는 깡은 없었으니 다시 고개를 들고 한쪽 팔로 턱을 괴곤 감기는 눈을 뜨려 애썼다.
조례는 평소와 다를바 없이 시작했다.
“여러분, 모두 집에서 아침 맛있게 먹고 왔나요?”
“네―”
“자, 다들 맛있게 먹고 온 것 같네요. 자, 오늘은 조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소개할 친구가 있어요. 자, 반으로 들어와서 자기소개 부탁할게요.”
“안녕, 이 반에 새로 전학오게 된 세니카 루 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네가 반으로 들어오고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내 눈은 계속해서 꿈뻑거렸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해서였다. 내 심장은 정말 폭주할 셈인지 쿵쾅쿵쾅 소리를 내었고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난지 오래였다. 선생님은 그런 내 모습은 보이지 않으시는지 다시 한번 폭탄을 던지셨다.
“그래, 세니카는 저기, 란 옆자리에 앉는게 좋겠다. 아, 란은 저기 창가 두 번째 줄에 앉아있는 붉은색 머리 남자아이란다.”
’내 이름 정도는 너에게 직접 알려주고 싶었는데... 아니, 잠깐만. 중요한건 이게 아니지. 무려 그 아이. 아니, 세니카가 내 옆자리에...??‘
내 두뇌가 작동을 멈추던 말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네가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안녕, 란. 조금 전에도 소개했지만 세니카 루 라고 해. 편하게 세니카 라고 불러줘.”
네가 먼저 건넨 인사에 끝내 내 머리는 펑 하고 터져버렸고, 나는 어버버 거리며 네게 답을 할 뿐이었다.
“ㅇ어.. 나도 잘부탁해...”
하, 얼마나 바보처럼 느껴졌을까...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간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법. 난 어쩔 수 없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조금 전에 선생님이 소개하셨지만 내 이름은 란이야. 란 벨르네피아. 다시 한번 잘부탁해.”
나는 최대한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어 보였다.
이윽고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선생님은 프린트물을 두고 와서 잠시 교무실에 다녀올테니 조용히 하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반을 떠나셨다. 오늘 1교시는 수학이었다. 책을 꺼내고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네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란. 내가 아직 교과서를 받지 못했는데 교과서 같이 볼 수 있을까?”
고작 책을 같이 보자는 이야기 뿐이었지만 난 네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는 사실만으로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당연하지. 아, 교과서 받으려면 도서관까지 내려가야 할텐데. 이따가 쉬는 시간에 같이 받으러 가자. 도서관 어디 있는지 알려줄 겸 해서.”
“정말? 고마워! 넌 참 친절하구나!”
세니카의 해맑은 목소리가 조금 떠들썩 하던 반을 개미 발자국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히 만들었다. 반 친구들의 얼굴이 점점 썩어들어갔다. 반에 들어오려 문을 열던 선생님도 석고상처럼 굳어버리셨다. 혹시 이 모습을 세니카가 볼까봐 난 세니카가 잠시 교과서에 눈을 돌리는 틈을 타 반 전체에 눈을 부라렸다.
평소라면 지루했을 시간이 지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세니카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받아오고 학교를 안내해 주고 밥도 함께 먹었다.
그렇게 너는 점차 내 일상에 한 부분이 되었다. 그렇게 5년하고도 두 개의 계절이 지났다. 내리쬐던 태양빛에 익어가던 여름은 가고 소복소복 눈이 내려앉는 겨울이 되었다.
너와 만난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노래 부를 너와 함께하기 위해 반쯤 충동적으로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꾸었다. 이젠 단순한 피아니스트가 아닌 명확하게 너의 곁에서, 너의 노래와 합을 맞춰 어우러지는 반주자를 꿈꾸고 있지만.
불확실하나 꿈이 정해진 이후론 신을 믿지도 않지만 피아노 연습을 위해 교회 성가대에 연주자가 되었다. 성가대라고 해봤자 이 촌구석에 교회는 그냥 찬송가를 부를 때 피아노 반주를 잠깐 쳐 주는 것 뿐이었으니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나 다름없었다. 동네 서점에서 간신히 찾은 소나티네와 체르니 40까지는 독학으로 전부 칠 수 있게 되었다. 유명한 클래식 음악과 네가 주로 부르는 노래들은 따로 악보를 찾아 이젠 수준급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나이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너와 호흡을 맞춘 약 4년간의 우리의 모든 순간들이었으니까.
그동안의 우리의 사이는 꽤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먼저 너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널 찾으려 했던 난 이제 너의 집, 좋아하는 음식, 취미 등 너에 대한 모든 것을 꿰고 있었고 그건 세니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며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했고, 그 공통점들은 우리를 더욱 끈끈이 이어놓는 접착제가 되어주었다. 네 곁에는 항상 내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믿음이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 * *
눈이 펑펑 내리는 날도 지나가고 이젠 서서히 새순이 움틀 준비를 하는 2월 중순이었다. 넌 여느 날과 같이 우리 집에 찾아왔고, 내 손을 이끌어 내가 널 처음 만났던 강으로 향했다. 이윽고 강에 도착하자 넌 잡았던 내 손을 놓고는 날 등지고 강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있잖아 란. 내가 전학오고 얼마 안 지나서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여기서 처음 봤다고 얘기했잖아? 근데말야, 사실은 나도 널 여기서 처음 만났어. 아무도 없길래 노래 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노래를 듣고 있던 거야. 그래서 부끄러워져서 남은 소절도 부르지 않고 집으로 뛰어갔어.”
5년이나 지났지만 널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아니, 정확히는 너와 관련된 모든 순간들을 잊을 수 없는 거겠지. 세니카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나도 란 너처럼 부모님이 한 분 뿐이아.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시고 엄마 혼자 날 기르기가 힘드셔서 잠깐 외할머니댁에 있는 거야.”
세니카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려 애썼지만 끝내 눈에서는 방울진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마침내 그 입에서 토해진 말은 비수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며칠 전에 엄마한테 연락이 왔어. 이제 나와 함께 지낼 준비가 끝났다고,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자고. 연락이 온 뒤로부터 계속 생각했어. 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지. 그래서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어.”
아까 전보다는 조금 나은 웃음을 슬며시 지은 넌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얘기했다.
“난 서울로 올라갈 거야. 서울에 가서 엄마와 함께 살거야. 그리고 노래를 배울거야. 난 절대 노래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거야. 노래하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닐 테니까. 그러니까 란, 너도 포기하지 말아줘. 항상 얘기했지? 내 곁에서 나와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네 꿈이라고. 내 유일한 반주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그러니까 네가 날 찾아와줘. 난 내 곁에 항상 네 자리를 비워둘 테니까. 약속이야?”
머리가 더 이상 생각을 그만두려 하는 것을 붙들어 겨우겨우 네 말을 끝까지 들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날벼락처럼 떨어진 너의 말이 내 숨통을 옥죄어왔다. 하지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네가 며칠동안 머리를 감싸며 고민한 진심이라면, 난 그런 너를 응원할 수 밖에 없겠지. 그러니ㅡ
“응, 세니카. 모든게 네가 선택한 일이라면 널 응원할게. 꼭 네 곁으로 돌아갈게. 그러니까...”
이내 내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네 기억속에 우는 모습으로 기억되기 싫어 애써 울음을 참았다.
“있지 세니카. 내가 너의 첫 번째 관객은 되지 못하니까. 내가 너에 첫 번째이자 마지막 반주자가 되게 해줘. 너와 헤어진다 해도 다시 만났을 때 몇 번의 연습 없이도 너와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할게. 내가 너의 곁으로 찾아갈게. 그러니 너도 날 잊지 말아줘. 너의 첫 번째는 항상 내가 될 테니까.”
“응! 기다릴게, 란! 너무 늦게 오진 말아줘!”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지만 우리들의 입가엔 활짝 핀 미소가 가득했다.
이별이었다.
* * *
그곳을 떠나 서울로 온지 4년 하고도 몇 개월이 더 지났다. 처음 이 곳에 왔을때는 한적한 시골과는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반 친구들과도 친해졌고 엄마에게 얘기해 이젠 정식으로 노래를 배우고 있다.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난 아직 정식 반주자가 따로 없다. 그 자리는 영원히 너의 것일테니까.
* * *
버스를 타고 학교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3분정도 걸어가면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보인다. 오늘따라 애들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원인은 전학생이었다. 고3 전학생도 놀라운데 잘생기기까지 했다니. 소란스러울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학생이 온다고 해도 수업까지 안 할 수는 없는 법. 조회는 평소와 똑같이 시작되어 이변 없이 끝났고, 1교시가 담임선생이 진행하시는 자율 시간이라 쉬는 시간 없이 자습을 시키신 담임선생님은 10분 일찍 끝내주셨다. 전학생이 우리 반이 아니라 실망한 친구들은 나를 이끌고 모든 교실을 돌아다닐 기세로 반을 나섰다.
우리는 가장 먼저 2반인 우리의 바로 옆 교실인 1반부터 염탐하러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학생은 1반에 있었고, 어쩐지 그 전학생은 많이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니 란, 네가 도대체 왜 여기에...???‘
붉은색 머리에 붉은색과 노란색의 그라데이션 눈 색을 가진 전학생은 아무리 봐도 란이었다. 혼란스러움도 잠시, 10분은 순식간에 지나고 쉬는 시간 시작 종이 울렸다. 나는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종이 치자마자 뒷문을 쾅 열고 들어가 네가 앉아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란, 네가 왜 여기있어...??”
“아, 세니카. 안녕, 오랜만이야. 잘지냈어?”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네게 물었건만 돌아오는 답은 해맑은 미소와 인사였다. 내 얼굴에 가득한 물음표들을 본 넌 나중에 점심시간에 얘기하자며 이야기를 미뤘다. 뭘 했다고 벌써 쉬는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난 반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수업시간에는 도통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갑자기 네가 나타났는데 수업이 머리에 들어올 리가. 애써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수업에 집중해 보지만 다시 너의 생각으로 돌아오는 탓에 난 결국 선생님께 주의를 받고야 말았다.
이후 쉬는 시간이 되자 이번엔 반 친구들이 난리였다.
“그 잘생긴 전학생이랑 알고 있는 사이였어??“
”완전 멱살 잡을 기세던데 친한 사이였어? 혹시 남자친구?“
온갖 이야기들이 튀어나오자 차마 그 모든 질문들에 대답할 자신이 없던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게 4교시 수업까지 끝나고, 점심시간의 시작이었다. 2교시 쉬는시간부터 친구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린 난 재빨리 1반에 들어가 란의 손목을 잡고 학교 뒤편 한적한 벤치에 앉아 오늘 내가 질문을 받은 만큼 란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어떻게 된거야? 갑자기 고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이라니!! 게다가 너 반응 보면 내가 여기 있다는 거 알고 있던 것 같은데. 일부러 이 고등학교로 온거야? 아니 그보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안거야?“
많은 양의 질문에 너는 하하 웃으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서울로 올라온 건 네가 떠나고 반년 정도 뒤에 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워보는 건 어떤지 물어봐서 그런거야. 그러다가 작년 늦가을에 이 학교 근처에서 열리는 콩쿨에 참가하려고 들른 적이 있었어. 그때 널 발견했던거야. 교복을 입고있는 모습을 봐서 열심히 주변 학교들에 교복을 찾아봤더니 이 학교더라. 그래서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이쪽으로 전학오게 된거야.“
가장 큰 의문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고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가 없던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다시 옛날처럼 돌아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그렇게 우린 마지막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다. 모두 꿈만 같았다.
우리들은 수업이 모두 끝나고 방과후에 남아 연습실로 가기 전 1~2시간정도 합을 맞추어 보았다. 처음에는 아직 조금 남아있던 어색함 때문에 어긋나긴 했지만 몇 번 더 연습해보니 원래부터 하나인 것 마냥 딱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학창시절 처음으로 함께 나간 콩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서 받은 첫 번째 상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우리의 앞을 막는 것 하나 없이 그대로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각자의 분야에서 나간 콩쿨은 모두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함께 나간 대회 또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우린 학창시절의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학사모를 던지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으며 어떤 이들은 울고, 어떤 이들은 웃었다.
우린 그저 우리가 함께했기에 그 누구보다도 활짝 웃었다.
[후기]
안녕하세요, 이번에 합작을 처음 참가해본 삭망월입니다. 이번 합작을 준비하며 예정에 없던 일도 생기고 이런저런 일이 많아 마감이 굉장히 힘들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글의 완급조절과 분량조절이 참 어려웠던 것 같네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있어서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합작이 된 것 같아요. 부족한 실력으로 쓴 글이지만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