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아주 잠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곳이 나를 데려온 존재에게 듣기를, 마르니카르타의 세계라고 했던 것 같다. 어떻게 그곳으로 갔는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단 한 가지 기억하는 것이 있다. ‘오케스트라’….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었던 것은... 많은 파이프가 길게 천장에 뻗어 그곳으로 소리를 내는 오르간…. 수많은 악기 중에 유독 그 악기가 눈에 띈 것은 100년이 지난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항상 그곳에 있으면서, 아주 큰 존재감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을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존재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는, 여우와 같이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처음 눈에 밟힌 것은 란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무언가 자신만의 경계선이 단단하게 있는 기분…. 현실과 현실이 아닌 그사이의 경계에 걸쳐 있는 존재. 란과 그 사람 둘 다 이곳에 있다는 존재감은 확실했다. 그 둘은 항상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지만, 아주 가끔 종종 이곳과 맞지 않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 사람에게 느껴지는 이 이질감이 나의 시선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란을 잠시 뒷전으로 해둘 수 있을 만큼의 그런 강한 이질감이….
“저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그렇기에 무모하게 저런 소망을 빌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결과가 이런 마지막이었으면,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몇 번의 선택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아마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반복했을 것이다.
창조주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도...
“죽고 싶지 않아.”
처참하게 매달렸다. 카신의 옷을 잡고 간신히 소리를 질렀다. 나 자신조차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고, 당황한 모습으로 있는 카신의 모습도 점점 흐려져 갔다.
‘이렇게 죽으면 안 되는데….’
...
‘란을 혼자 두고 가면 안 되는데….’
살고 싶었다. 란을 지켜야 했고, 나와 란은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나도 란이 없으면 안 되는걸….’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목소리를 내보려 해도 나오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로부터 란을 지키고 싶었다. 나와 란의 아이를 보고 싶었다.
‘안돼…. 란.’
태어날 아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분명 란을 닮았을 것이다. 아이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것 같았다.
... 안 되는데......
그렇게 나의 의식이 끊겼다.
의식이 끊긴 줄 알았던 내가. 어느 어둠 속에 혼자 서 있게 되었다. 그 어둠 속에서는, 란도, 카신도, 노리도 보이지 않았으며,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곳을 끊임없이 걸어갔다.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심지어 내가 맞게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른 채 계속 걷기만 했다. 시간 감각도 없이, 어둠 속에 있다 보니, 점점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조차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고 내 정신조차 희미해졌을 때, 누군가의 말소리와 빛이 나에게 쏟아져 내려왔다.
“쥬우비, 얼른 란이랑 프시히 불러와!”
“선배! 선배! 얼른 빨리... 형수님이!”
“뭐야... 세니카가 일어났어?”
“일단 다들 진정해. 세니카가 정신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정신없으면 힘들어할 수 있으니까.”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말소리. 규칙적으로 들리는 기계음. 눈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쨍하게 밝은 전구…. 처음 보는 누군가가 나를 보며 정신이 드냐고 하였다. 정신은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누구였으며, 왜 이런 곳에 누워 있는지, 나의 곁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은 채 한동안 병원에서 생활해야 했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나를 끊임 없이 찾아와 같이 있어 준 사람들이 나에게 과거의 기억에 대한 이것저것을 말해주었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저으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나에게 한 사람은 말을 걸어왔다.
“세니카... 괜찮아?”
붉은 머리를 가지고, 노란 눈을 가지고 있는 한 남성, 란이라고 하는 사람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누군가가 기억이 날 듯하였지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무언가 아주 크며, 화려하고, 존재감이 확실한 사람들….
‘누군가가 기억이 날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것은 왜일까….’
나는 나에게 찾아오는 그를 바라보며 저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란은 나에게 작은 인형을 주며 말을 건넸다.
“세니카, 프시히가 그러는데, 이제 외출해도 된다고 해. 카신이 오케스트라 티켓 구했으니까 같이 가자.”
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신은 나에게 티켓 두 장을 건네주었다.
“여기, 그… 오르가니스트 체르타...였나? 그 사람이 나오는 오케스트라 티켓이야. 세니카랑 란 너희 둘 다 그 사람이랑 친했잖아. 그리고 계속 병실에만 있었으니 심심할 거 아니야 그러니 란이랑 데이트할 겸 같이 갔다 와.”
카신과, 란, 노리. 나까지 포함에서 거의 20년을 알고 지낸 친구라고 했다.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서 만난 우리 넷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다고 한다. 대학교 입학 당시, 나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깨어난 것은 거의 6개월 만이었으며, 현재 나이는 21살이라고 했다.
있잖아, 란... 너는 우리가 21년을 살아왔다고 하지만... 나는 왜 더 긴 시간을 살아온 것 같은지 모르겠어...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도 꿈인 것 같은데... 꿈이 아닌 걸까?
란과 함께 도착한 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오르간에 나는 시선을 고정시켰다. 예전에도 형태와 모양이 완벽하게 똑같은 오르간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또 멍을 때리자, 란은 나에게 또 조심스럽게 괜찮냐 물었고 란의 부름에 시선을 거두고 란을 바라보며 괜찮다고 말을 건네주었다.
“응, 난 괜찮아 란. 얼른 앉자”
홀이 어두워지며, 한 연주자가 무대를 향해 인사를 했다. 그 연주자는
체르타였다. 청발에 오드아이를 가지고 있는 묘한 그를 보니. 란을 볼 때 들었던 느낌이 그렇게 생각을 하며 있을 때, 서서히 들리는 악기 소리와 그 중간에 웅장하게 울리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렸다. 웅장하고 깊이가 있는... 왠지 내가 알던 누군가와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잠시 데려갈 곳이 있다며 관객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홀 안에 앉아 있었다.
“세니카. 이제 괜찮대. 가자.”
그가 나를 데리고 한 대기실 앞으로 데려갔다. 대기실에 쓰여 있는 이름은 체르타 였다.
“들어와요.”
노크하자 대답이 들려왔으며, 나와 란은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랜만이야. 세니카,란. 연주 어떤 것 같았어?”
그는 문이 열리자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그 둘은 꽤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같았지만, 기억이 없는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란이 내가 곤란한 걸 알았는지 그는 이내 말을 잠시 멈췄다.
“아…. 미안, 말이 너무 많았구나….”
“괜찮아요…. 조금 혼란스러웠을 뿐이어서….”
나는 괜찮다고 하였지만 란은 걱정이 되었는지 몸이 좋지 않으면 바로 말을 해달라고 했다. 체르타는 내가 예전에 여행했을 때, 만났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건너 건너로 란과도 알고 있어서 그와 종종 같이 만나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한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은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의 일 같았다.
“전혀 떠올리지 못했구나, 이제 돌아가. 로제로카르타로….”
눈을 떴다. 알 수 없는 꿈을 꾼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고, 어느 길을 잃었다가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 긴 꿈에서, 그저 기억에 남는 것은 마르니카르타에서 ‘오케스트라’를 봤던 것과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었던 것은... 많은 파이프가 길게 천장에 뻗어 그곳으로 소리를 내는 오르간…. 수많은 악기 중에 유독 그 악기가 눈에 띄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째서 인지는 200년이 지난 후에야 할 수 있었다.
[후기]
안녕하세요! 이번에 네이버 웹툰 트럼프 합작 <플랫>에 참여한 련환(셸)입니다.
까까스로 마감을 하고,후기 작성할 1시간이 남아서 후기를 작성을 하려고해요! (원래의 후기도 글이 아니었습니다...)
현생에 지쳐서 트위터에 잘 들어오지도 못했던 때에, 탐라에서 합작관련 이야기가 복작복작하게 있더라구요! 그래서 알게되었습니다! 그 뒤의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정신없이 쏟아지는 마감의 일정을 모른채... 계속 미뤄지게 되는 저의 일정을 알지 못한채 말이죠!
일단... 읽으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살짝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장력이 결코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어요!)
대충 설명을 하자면
세니카가 죽고 난 뒤에 간 곳은. 마르니카르타(인간세계)에요! 인간세계지만 조금 다른 느낌의... 세니카가 기억을 못 했을 뿐, 그 세계가 처음에 글이 시작될 때 언급했던 ‘전에 아주 잠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어쩌고 저쩌고’ 이 부분에서 일어난 일이고요!
세니카는 원래 세계관에서 죽고 난 뒤 인간세계에서 잠시 머물렀다는 형식이며, 그런 세니카를 인간세계의 체르타가 시간을 거슬러서 다시 로제르카르타로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 체르타는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어요. 아얘 별개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해서 말하자면 특정...거의 200년이라는 시간을 돌고 도는 그런 느낌이라는거겠죠? <세니카는 반복되는 시간의 굴래에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여 같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인데... 그 부분은 ‘결과가 이런 마지막이었으면,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몇 번의 선택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아마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반복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어렴풋이 표현을 해줬어요!
사실 원래 쓰고 싶었던 것은
세니카가 체르타에게 호감이 갔던 것은 란과 비슷한 느낌에서가 아닐까에서 드는 제 주관적인 생각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원작에서 체르타의 소망이 이뤄졌으면 이라고 소망을 빈 세니카의 마음도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
몇 번이고 내용 자체를 뜯어 고쳐버리고... 막판에는 저도 제가 무엇을 썼는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일이 겹치는 바람에 우왕좌왕하면서 플랫마감일이 조금 더 시간이 있었기에 미루고 미루다가... 아주 엉망이 되어버려서. 조금 우는 중이에요...
섬네일에 있는 꽃은... 하얀 안개꽃과 붉은 양귀비인데요... 일단 흰 안개꽃 꽃말은 죽음과 슬픔 (세니카의 죽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붉은 양귀비의 꽃말은 위로,위안,몽상이 있는데.., 전 몽상을 골랐어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니카의 죽음과 슬픔, 및 세니카의 몽상(夢想_꿈과 같은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 이 전체의 글을 요약하신거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럼 플랫 합작 하신 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으며! 전 이만 푹 잠을 자겠습니다!
